<93°94′90″ Local Next : 좌표를 찾습니다>, 전시 전경, 평촌아트홀, 2026
<particle log>, 2채널 영상, 3d 프린트, 가변 설치, 2026
<particle log>, 2채널 영상, 2분 16초, 가변 설치, 2026
<particle log>, 2채널 영상, 2분 49초, 가변 설치, 2026
#1 이동
나는 결혼 이후, 약 2년 반 전 배우자의 해외 주재원 파견으로 멕시코로 이주했다. 동시에 최근에는 한국에서 첫 대학 강의를 맡게 되면서,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서 강의를 마치고 멕시코로 돌아가고, 다시 멕시코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일을 반복한다. 비행기를 타고 15시간 이상 이동하면 시간과 날씨, 언어가 달라지고, 마시는 물 또한 바뀌면서 몸도 조금씩 달라진다. 석회 성분이 많은 물과 건조한 기후로 인해 피부에는 트러블이 쉽게 생기고, 멕시코시티의 높은 고도로 인해 깊은 잠을 자지 못하기도 한다. 익숙했던 생활의 감각에도 매번 다시 적응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장소를 오가는 일은 내가 머무는 공간과 그 안에서의 일상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2 방
한국에서 강의를 하는 동안 남편은 멕시코에서 혼자 생활하기에 더 적합한, 방 하나와 거실 하나로 이루어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학기가 끝나고 내가 다시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에는 이전에 함께 생활했던 넓은 집과는 달리, 하나의 방에서 잠도 자고, 작업도 하고, 휴식도 취한다. 자연스럽게 하루의 많은 시간이 그 방 안에서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뜨며 침대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작업을 하다가 잠시 쉬기도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한다. 집 안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방이 되고, 그 중에서도 침대는 잠을 자는 곳인 동시에 생활하고 휴식하는 공간의 일부가 된다.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거나, 작업을 하다 잠시 몸을 기대어 쉬면서 주변을 바라본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3 먼지
같은 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침대 주변에 내려앉은 먼지, 남편이 누웠던 자리에 남겨진 머리카락, 바닥과 침대보 곳곳에 남아 있는 비듬인지 각질인지 알 수 없는 작은 가루들... 나는 이런 것들을 바라보다가 10년전 처음 먼지를 모으기 시작했던 때를 떠올린다. 처음 먼지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 공간의 쓰임에 따라 먼지가 다르게 쌓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먼지를 수집하고, 장소와 날짜를 기록했다. 그 다음에는 먼지를 판에 옮기고 잉크를 묻혀 종이 위에 찍어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먼지의 색과 질감은 사라졌다. 장소를 구분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자, 나는 먼지를 이루고 있는 작은 입자와 그 흔적을 보게 되었다. 이후 우주 먼지와 디지털 공간에 남겨진 인터넷 먼지까지 확장하며 시선을 먼 곳까지 이동시켰다. 하지만 한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생활하는 지금, 그 시선이 다시 내가 머무는 공간으로 돌아왔다. 침대와 침구, 방 안에 쌓이는 먼지를 다시 들여다본다.
#4 침구와 진드기
남편과 멕시코에서 함께 지낼 때에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불을 세탁한다. 세탁기로 이불과 베개를 가져가지 전, 창문을 열고, 이불의 먼지를 세게 털어낸 다음, 이불과 베개의 커버를 벗겨 내면, 침구 위로 흩날리다가 가라앉는 먼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알 수 없는 잔기침과 함께 어렸을 적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먼지 속을 기어 다니던 아주 작은 생명체, 집 먼지 진드기 말이다. 밤 사이 흘린 땀과 떨어져 나온 각질, 비듬 등을 먹고 살아가는 진드기가 분명 여기에 있을 것이다. 순간 나는 매일 잠드는 이불 속에서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며 소름이 돋았다가, 재 빨리 벗긴 커버들을 세탁기 안에 넣고 고온 세탁 버튼을 누른다.
#5 버섯
세탁기를 돌리고, 오전에는 집 앞 마트에 가기 전에 아파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길을 걷다 보면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몇 개의 버섯이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인적이 드문 공사 현장에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두고 간 배변이 보이기도 하고, 치워지지 않은 낙엽도 곳곳에 쌓여 있다. 우기에 밤새 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이면, 낙엽과 흙이 뒤섞인 자리에 작은 버섯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눈앞에 놓인 것들을 하나씩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 남겨 놓은 것, 떨어진 것, 쌓인 것, 비에 젖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흙과 뒤섞이고, 그 자리에서 다시 무언가가 자라난다.
#6 Particle log
먼지를 보고, 그 안에 있을지 모르는 진드기를 상상하고, 비가 내린 뒤 흙 위에 피어난 버섯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생명처럼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는 그들을 하나의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작은 흔적으로 바라본다. Particle log는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것들을 따라가며 기록하는 일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지부터 침구 속의 진드기, 흙 위에 모습을 드러낸 버섯까지, 나는 각각의 존재를 관찰하고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살핀다. 때로는 직접 볼 수 없는 것을 상상하고, 이미 지나간 흔적을 통해 그 이전의 움직임을 짐작하기도 한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가만히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 안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지고, 쌓이고, 흩어지고, 이동하고, 다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그 작은 변화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내가 머문 공간과 그곳에서 흘러간 시간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