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의 필요
: 우주, 화성 이주, 인터넷 먼지, 그리고 포스트-프린트
안진국 (미술비평)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삶이 압축되어 있는 물리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이 응축된 상징체다. 따라서 이사나 이주, 심지어 여행까지도 그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소라게처럼 자신이 살았던 집을 압축해서 함께 가지고 가는 것과 같다. 여행자의 캐리어는 여행을 위한 또 다른 집이며, 이사나 이주는 함께 할 것과 버린 것을 구분하는, 집을 압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예술가에게 작품도 하나의 집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과 사유가 집약되어 있다는 집.

⟪그림 같은 집(Picturesque House : HOUSE & ZIP)⟫은 ‘집(house)’와 ‘집(zip)’이라는 동음이의어를 통해 예술적 집약체(zip)가 작가의 삶(house)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아트-마켓 형태의 전시다. 하지만 강보라에게 있어서 ‘집’이 ‘작가의 삶(house)’과 ‘삶의 집약체로서 예술(zip)’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학원 졸업 후 잦은 작업실 이전과 그 과정에서 발견한 ‘먼지’의 존재가 작가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재(2024년) 강보라는 멕시코 시티 인근의 인테르로마스(Interlomas)로 이주해 살고 있다.

강보라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한 먼지를 수집하여 판화(printmaking)로 찍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이 작업의 시작은 2015년이다. 이사하면서 냉장고를 옮길 때, 냉장고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발견하면서 이 작업이 시작됐다. 이러한 먼지는 생활 공간으로서 집과 무의식적 잔유물을 지닌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삶의 공간을 옮길 때, 보이지 않던 먼지는 드러나고, 그것을 제거하며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강보라는 먼지의 생김새가 장소에 따라 다를 것이라 가정하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자신의 작업실과 경기도 이천 부근, 그리고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먼지를 수집하여 작업으로 옮기기도 했다. 이를 통해 먼지의 존재론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우주와 디지털로 확장된 먼지
강보라는 2022년 개인전 ⟪Cosmic Dust⟫(2022.07.13. ~ 8.1. 탈영역우정국)를 통해 ‘먼지’의 개념을 우주로 확장하고,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작업의 범주를 디지털 세계로 넓혔다. 이 전시에서는 작가가 수집해 판화로 찍어낸 현실의 먼지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세계에서 유영하는 먼지 덩어리를 증강현실로 볼 수 있었다. 일상의 먼지에서 출발한 작가의 시야가 현실을 넘어 ‘디지털 세계의 먼지’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렇게 우주와 디지털로 확장한 강보라의 사유는 ⟪디지털 고물상(Digital junk dealer)⟫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화성 이주’라는 SF적 서사로 이어진다.

⟪디지털 고물상⟫은 컴퓨터나 인터넷 어딘가에 남아 있는 쓸모없는 디지털 부스러기(digital bread crumbs)를 모아, 이를 NFT(Non-fungible token)를 적용한 디지털 아트, 즉 크립토 아트(crypto art)로 교환할 수 있게 한 프로젝트다. (NFT 아트와 혼용되는 크립토 아트는 ‘암호화’가 지닌 예술적 의미에 방점을 둔 용어다.) 이와 함께 크립토 아트의 원본인 동일한 실물 판화 작품도 소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쉽게 말해, 쓸모없는 디지털 파일들이 디지털 미술 작품이 되고, 실물 미술 작품으로 교환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프로젝트다. 강보라는 이 프로젝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적인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서사를 부여한다.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용어와 개념으로는 ‘디지털’과 ‘고물상’, ‘인터넷 먼지’, ‘I-E’, ‘D’ 등을 들 수 있다. ‘디지털’과 ‘고물상’은 이번 프로젝트의 대상과 작동 방식을 알려주는 용어로, 이 두 용어를 결합한 ‘디지털 고물상’은 ‘사용할 수 없거나 필요가 없는 디지털 데이터’를 ‘거래하는 장소 혹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인터넷 먼지’는 기존의 ‘디지털 세계의 먼지’(⟪Cosmic Dust⟫)라는 개념을 확장한 용어로, ‘온라인 생태계의 연결성에서 발생하는 쓸모없어지거나 사용할 수 없는 디지털 데이터’를 의미한다. 그런데 왜 프로젝트 명칭이 ‘인터넷 고물상’이 아닌 ‘디지털 고물상’일까? 그 힌트는 ‘I-E’라는 용어에서 찾을 수 있다. ‘I-E’는 한때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의 줄임말로, 쓸모없어진 과거의 기술을 상징한다. 작가가 I-E를 사용한 것은 “인터넷 세상에 떠도는 사용하지 않거나 버려지거나 기한이 지나버린” 디지털 데이터를 의미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인터넷 먼지’는 연결성(인터넷)과 단절(인터넷 익스플로러 서비스 종료)을 함축하기 위해 사용된 반면, 프로젝트 명칭(디지털 고물상)에 ‘디지털’을 사용한 것은 수집 대상의 속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인터넷 먼지’는 가치를 강조한 용어이고, ‘디지털 고물상’은 대상의 속성에 초점을 맞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요 용어로 ‘D’가 있다. Dust(먼지)의 약자 D는 작가가 제시한 화폐 단위다. 작가는 인터넷 먼지를 ‘메일함에 쌓인 오래된 메일’, ‘기한이 지나 열어볼 수 없는 첨부파일’, ‘휴지통 속의 파일’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를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으로 분류한다. 인터넷 먼지는 파일의 특성과 관계없이 그 용량으로 거래되는데, 이때 부여되는 단위가 D다. D는 가상화폐의 단위이자 파일 용량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2123년 화성 이주민 3세대의 삶
⟪디지털 고물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독특한 SF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강보라는 이전 전시 ⟪Cosmic Dust⟫에서 전시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제3염색체」라는 단편소설을 선보였는데, 이 소설을 ⟪디지털 고물상⟫ 프로젝트를 위한 웹사이트(www.digitaljunkdealer.com)에 다시 실었다(‘디지털 고물상의 역사’ 카테고리). 이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고물상’이 ⟪Cosmic Dust⟫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이 프로젝트와 연계된 또 다른 단편소설인 「디지털 고물상」도 선보였다. 「제3염색체」에서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인류가 그곳에서 겪는 환경 문제와 염색체 주사 접종으로 인해 세대가 지나며 외모와 특성이 변하는 상황을 그린다. 이 소설의 후속편인 「디지털 고물상」은 화성 이주민 3세대가 데이터를 농작물처럼 관리하며, 밀폐된 돔 안의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생활 정보 데이터를 청소해야 하는 상황을 다룬다. 이 소설에서는 정부, 기업, 민간 차원에서 소상(소규모 고물상), 중상(중규모 고물상), 대상(대규모 고물상)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는데, 이러한 활동은 지구에서부터 대대로 고물상을 운영했던 I-E 가문에서 시작되었고, 현재 Bora I-E가 데이터 청소 사업을 맡고 있다. 또한, 웹사이트에 보라봇(Bora bot)을 이용해 화성에서 인터넷 먼지(쓸모없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임을 할 수 있게 구성해 놓음으로써(‘거래 연습’ 카테고리) 이 세계관의 실재성을 더하고 디지털 고물상의 서사를 더욱 강화했다.

⟪디지털 고물상⟫의 배경은 2123년이고, 장소는 화성이며, 중심인물은 Bora I-E이다. 프로젝트 명칭이 ‘사람(dealer)’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SF 서사가 Bora I-E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ora I-E는 퇴역한 탐험가로, 디지털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수집한 인터넷 먼지를 화성의 기업체와 정부에 되파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NFT로 발행된(minting) 크립토 아트뿐만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의 실물 작품을 제공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물질과 비물질이 교차하는 포스트-프린트(post-print)
⟪디지털 고물상⟫은 불필요한 생활 정보 데이터(인터넷 먼지)를 수집해서 가상화폐(D)로 바꾸고, 그것을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로 교환하며, 동시에 그 디지털화된 판화의 실물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한 프로젝트다. 그렇다면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란 어떤 작품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퇴역 탐험가이자 디지털 고물상을 운영하는 Bora I-E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Bora I-E는 2123년 화성에서 사는 가상인물로, 사실상 강보라의 분신이다. 따라서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는 ‘강보라의 디지털화된 판화’를 의미한다. 강보라(“Bora I-E”)의 실물 판화를 디지털 사진 촬영이나 스캐닝을 통해 디지털로 변환하여(“디지털화된”) NFT를 적용해 에디션이 있는 크립토 아트(“판화”)로 만든 것이 바로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인 것이다.

강보라의 작업은 광의적 관점에서 ‘판화’에 속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판화’라고 부른다.) 판화의 주요 속성 중 하나는 ‘복수원본성’이다. 쉽게 말해, 동일한 이미지의 작품이 복수로 존재하지만, 각각이 원본으로 간주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강보라가 창작하는 물리적 작품은 같은 이미지의 작품이 다수 존재하더라도 그 각각이 원본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같은 맥락에서, 실물 판화를 디지털 사진 촬영이나 스캐닝을 통해 디지털 작품으로 변환했을 때, 이 디지털 작품은 실물 판화의 하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실물 판화와 동등한 복수원본 작품이 된다. 강보라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복수/복제의 존재론적 의미를 여러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실물 판화를 디지털화하여 복수원본성을 지닌 물질(실물 판화)과 비물질(디지털화)로 존재하게 하고, 변환한 디지털 작품에 NFT를 적용해 에디션 있는 크립토 아트로 만들어 디지털 복수원본성을 구축한다. 그리고 같은 이미지의 실물 판화와 크립토 아트를 교환함으로써, 그들 간의 가치가 동등함을 보여준다. 강보라는 물질과 비물질을 넘나들며 복수/복제의 존재론적 의미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인 판화 형식으로 작업을 시작한 강보라는, 판화의 범주를 넓히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디지털 형식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디지털 고물상⟫은 쓸모없는 것의 의미를 되짚을 뿐만 아니라,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복수/복제 작품(판화)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사유하도록 이끈다. 그의 작업 세계가 이렇게 확장되고 있기에, 내일의 강보라 작업이 더욱 궁금해진다.
SF 로 만나는 먼지의 세계
: 인터넷 먼지와 포스트-프린트의 가능성
안진국 (미술비평)
“We literally are stardust. We are viscerally made of the stars.
[우리는 말 그대로 별의 먼지다. 우리의 내부(내장)는 별들이 만들었다.]”
— NASA의 천체물리학자 앰버 스트라운(Amber Straughn), 2017년 10월 1일 CBS NEWS 인터뷰 중

먼지의 존재론: 우주와 디지털로 확장된 먼지
천체물리학자 앰버 스트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혈액 속의 철분과 뼈의 칼슘은 수십억 년 전에 폭발한 별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졌다. … 그 먼지[폭발한 별의 먼지]는 우주로 퍼져 나가 결국 행성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다.”(South by Southwest Conference, 2023년 3월 14일) 별이 빛날 때 가스가 생긴다. 이 가스는 우주로 퍼지면서 먼지가 된다. 별이 폭발해도 먼지가 된다. 이 우주먼지는 모여서 작은 돌멩이가 되고, 커지면 소행성이, 더 커지면 행성(planet)이 된다. 별(star)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인간과 같은 생명체의 씨앗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짧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감지할 수 없다. 우주적인 시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강보라는 2022년 《Cosmic Dust》(2022.07.13. ~ 8.1. 탈영역우정국)라는 개인전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작업해 왔던 ‘먼지’의 개념을 우주로 확장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먼지를 우주적인 관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물론 우주먼지가 직접적인 작업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주먼지와 일상의 먼지는 다를까? 어떤 측면에서 일상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우주먼지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먼지는 그 특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강보라는 먼지의 생김새가 장소에 따라 다를 것이라 가정하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자신의 작업실과 경기도 이천 부근, 그리고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먼지를 수집하여 작업으로 옮긴 적이 있다. 그런데 작가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먼지는 장소에 따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작가는 일상생활 중 발생한 먼지를 수집하여 판화(printmaking)로 찍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먼지의 범주를 어디까지 두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지겠지만, 미세한 입자로 정의한다면, 먼지는 분자의 차원에서도 존재한다. NASA는 우주먼지가 “분자의 생성과 응집을 일으키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일상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우주의 먼지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죽으면 무기물이 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먼지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동식물이 마찬가지다. 이 먼지들이 쌓여서 땅이 되고 산이 된다. 지구가 된다. 먼지가 지구행성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과학적 연구를 위해 일상의 먼지와 우주먼지를 구분하고 층위를 나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주의 순환적 생성 차원에서 그 구분은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강보라가 《Cosmic Dust》에서 먼지를 우주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일상적인 먼지와 우주의 먼지가 다르지 않음을 감각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리라.

《Cosmic Dust》가 흥미로운 것은 그 시야를 우주로 확장한 것뿐만 아니라,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디지털 세계로까지 작업의 범주를 넓혔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는 작가가 수집하여 판화로 찍어낸 현실의 먼지를 보면서 동시에 디지털 세계에 유영하고 있는 먼지 덩어리를 증강현실로 볼 수 있다. 이 디지털 먼지 덩어리는 코딩 언어가 뭉쳐서 만들어 낸 형상으로, 비물질적인 형태지만, 물리적 세계의 법칙(먼지 덩어리가 뭉치는 작용)과 유사한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일상의 먼지에서 시작된 작가의 시야는 현실을 넘어 디지털 세계의 먼지로 확장하고 있다. 이렇게 우주와 디지털로 확장된 강보라의 사유가 현재 닿은 곳은 《디지털 고물상(Digital junk dealer)》이라는 프로젝트다.

디지털 고물상: 2123년 화성 이주민 3세대의 삶
《디지털 고물상》은 쓸모없지만 컴퓨터나 인터넷 어딘가에 존재하는 디지털 부스러기(digital bread crumbs)를 수집하여 NFT(Non-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를 적용한 디지털 작품과 교환하고, 그와 함께 동일한 실물 판화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구성한 프로젝트다. 쉽게 말해서 사용할 수 없는 디지털 파일들이 디지털 미술 작품이 되고, 더불어 실물 미술 작품이 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강보라는 이해하기 쉽거나 상징적인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고, 관심을 둘 수 있도록 서사를 부여한다.

프로젝트의 중요한 용어와 개념으로는 ‘디지털’과 ‘고물상’, ‘인터넷 먼지’, ‘I-E’, ‘D’ 등을 들 수 있다. ‘디지털’과 ‘고물상’은 이번 프로젝트의 대상과 작동 방식을 알려주는 용어다. 이 두 용어를 결합한 디지털 고물상은 ‘사용할 수 없거나 필요가 없는(고물) 디지털 데이터’(디지털)를 ‘거래하는 장소 혹은 사람’(고물상)이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참고로, 프로젝트의 영문명은 ‘Digital junk dealer’로, 이 명칭으로 본다면, 작가가 ‘사람(dealer)’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행위 장소보다 행위자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터넷 먼지’는 기존의 ‘디지털 세계의 먼지’(《Cosmic Dust》)라는 개념이 확장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인터넷 먼지와 디지털 먼지는 다르다. 인터넷이 온라인 생태계의 혈관이라면, 디지털은 그 혈관을 이동하는 혈액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터넷은 네트워크를 부각하기 위한 용어고, 디지털은 형식을 드러내기 위한 용어다. 인터넷이 디지털을 사용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는 디지털을 인터넷에 속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과 디지털은 그 용어가 지닌 지향점이 다르기에 단순하게 포함관계로 판단하면 그 의미가 납작해질 뿐이다. 따라서 용어의 차이를 세심하게 고려하면 인터넷 먼지는 ‘온라인 생태계의 연결성에서 발생하는 쓸모없어지거나 사용할 수 없는 디지털 데이터’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 먼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프로젝트 명칭은 왜 ‘인터넷 고물상’이 아닌 ‘디지털 고물상’으로 한 것일까? 이에 대한 힌트는 ‘I-E’라는 용어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I-E’는 한때 거의 95%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독점 체제를 유지했으나,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의 줄임말이다. 1995년 8월 17일 출시하여 한때 웹 브라우저를 장악했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2000년대 초반에 파이어폭스(Firefox)와 크롬(Chrome) 등 성능이 뛰어나고 보안 및 호환성이 좋은 웹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결국 단종됐고, 마지막 버전인 11은 2022년 6월 15일로 서비스 지원을 종료했다. 따라서 I-E는 광의적 의미에서 과거의 기술(작가의 말에 의하면 ‘기술의 죽음’)을 의미하며, 협의적 관점에서는 단절된 연결성을 의미한다. 쓸모없어진 과거의 기술을 상징하는 것이다. I-E의 의미를 고려할 때, ‘인터넷 먼지’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단순히 컴퓨터에 잠자는 디지털 데이터를 의미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세상에 떠도는 사용하지 않거나 버려지거나 기한이 지나버린” 디지털 데이터를 의미하기 위함이다(프로젝트 웹사이트, 이하 웹사이트). I-E와 연계해서 생각한다면 연결성(인터넷)과 단절(인터넷 익스플로러 서비스 종료)을 함축하기 위해 작가가 ‘인터넷 먼지’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프로젝트 명칭(디지털 고물상)에 ‘디지털’을 사용한 것은 수집하는 대상의 속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인터넷 먼지’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용어이고, ‘디지털 고물상’은 대상의 속성에 초점을 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주요 용어로 ‘D’를 들 수 있다. Dust(먼지)를 줄여서 표시한 D는 작가가 제시한 화폐 단위다. 작가는 인터넷 먼지를 “메일함에 들어 있는 오래된 메일, 기한이 지나서 열어볼 수 없는 첨부파일, 쌓여 있는 휴지통 속의 파일”로 설정하고 있으며, “크게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으로 분류한다.”(웹사이트) 인터넷 먼지는 파일의 특성과 관계없이 그 용량으로 거래되는데, 이때 용량에 따라 부여하는 단위가 D이다. D는 가상화폐의 단위이면서 동시에 파일의 용량을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강보라는 《Cosmic Dust》 전시에서 이 전시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제3 염색체」라는 단편소설을 선보였다. 작가는 《디지털 고물상》 프로젝트를 위한 웹사이트(www.digitaljunkdealer.com)의 ‘디지털 고물상의 역사’라는 카테고리에도 이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이는 이번 프로젝트가 《Cosmic Dust》의 세계관과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소설과 더불어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디지털 고물상」이라는 단편소설 또한 선보였다. 「제3 염색체」에서 그는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 된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상황과 그곳에서 인간이 조성한 환경,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직면하여 해결책으로 제시된 염색체 주사 접종, 이 때문에 세대가 지나면서 생김새와 특성이 변하게 된 상황 등 화성 이주민의 가상 역사를 펼쳐 놓는다.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고물상」에서는 화성 이주민 3세대가 데이터를 농작물처럼 관리하는 상황에서 밀폐된 돔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필요한 생활 속 정보 데이터를 청소해야 하는 상황과 이를 위한 정부, 기업, 민간 차원에서 소상(소규모 고물상), 중상(중규모 고물상), 대상(대규모 고물상)의 활동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옛 지구에서부터 대대로 고물상을 운영했던 I-E 가문에서 시작하였고, 현재의 Bora I-E가 데이터 청소 사업을 맡게 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과 함께 웹사이트의 ‘거래 연습’ 카테고리에는 보라봇(Bora bot)으로 화성에 있는 인터넷 먼지(쓸모없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임을 할 수 있게 구성해 놓음으로써 이 세계관의 실재성을 부여하고 디지털 고물상의 서사를 강화한다. 이러한 세계관과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이 프로젝트의 배경 시기는 2123년이고, 장소는 화성이며, Bora I-E가 중심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앞서 영문 프로젝트 명칭이 ‘사람(dealer)’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는데, Bora I-E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한 것을 보면 영문명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디지털 고물상」에서 Bora I-E가 이 일을 맡게 된 배경을 서술한 것을 통해서도 이 프로젝트가 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Bora I-E는 퇴역한 탐험가로 디지털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집한 인터넷 먼지를 사들여 그것을 화성의 기업체와 정부에 되파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그는 NFT 민트(mint, 발행) 디지털 작품과 같은 이미지의 실물 작품을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를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가 구성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작과 변환, 그리고 복수원본성
앞서 언급했듯이 《디지털 고물상》은 인터넷에 존재했던(인터넷으로 전송 및 다운로드했던/됐던) 디지털 데이터(인터넷 먼지)를 수집해서 가상화폐(D)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NFT 민트 디지털 작품으로 교환하고, 동시에 NFT 민트 디지털 작품의 실물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수집된 인터넷 먼지와 교환하게 되는 NFT 민트 디지털 작품 및 실물 미술 작품의 창작자와 둘째, NFT 민트 디지털 작품과 원본 작품의 존재론적 의미다.

미술 작품의 창작자와 관련된 부분은 이 프로젝트가 Bora I-E를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추하게 한다. 프로젝트 웹사이트에는 수집된 인터넷 먼지를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로 교환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웹사이트). Bora I-E는 2123년 화성에서 사는 가상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Bora I-E는 강보라의 분신이다. 이는 웹사이트에 게시된, 인터넷 먼지와 교환해 준다는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강보라의 작품으로,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도 결국 그의 작품을 의미한다. 그가 창작한 실물 판화를 디지털 사진 촬영이나 스캐닝을 통해 디지털로 변환하여 NFT 민트한 작품이 바로 ‘Bora I-E의 디지털화된 판화’인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Bora I-E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은 강보라의 작품이 교환 대상이 되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수집된 인터넷 먼지의 속성에 따라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예술가의 개입 없이) 교환 작품이 창작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이 상황에서는 인터넷 먼지의 속성과 미술 작품의 이미지가 연동되기 때문에 거래와 교환보다는 인터넷 먼지가 이미지로 변화되는 과정이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Bora I-E는 중개자의 역할만 하게 된다.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인터넷 먼지를 거래하고 교환함으로써 가치를 생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Bora I-E의 거래뿐만 아니라, 창작과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Bora I-E가 디지털 고물상인 동시에 예술가이기에 그 존재가 중요하고, 이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교환해 줄 작품과 그것을 창작한 작가가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강보라의 작업세계에서 근원적이며 핵심적인 지점이 복수/복제 작품의 존재론적 의미일지도 모른다. 강보라의 작업은 광의적 관점에서 ‘판화’에 속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판화’라고 말한다.) 판화는 여러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 주요한 속성이 바로 ‘복수원본성’이다. 쉽게 말하면 동일한 이미지의 작품이 복수로 존재하지만, 이 작품들 하나하나를 원본으로 본다는 의미다. 따라서 강보라가 창작하는 물리적 작품은 같은 이미지의 작품이 다수 존재하더라도 그 각각이 원본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이 판화의 존재론이다. 같은 맥락에서 실물 판화를 디지털 사진 촬영을 하거나 스캐닝하여 디지털 작품으로 변환했을 때, 이 디지털 작품은 위계적 관계 속에서 실물 판화의 하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횡적 관계 속에서 복수원본작품이 된다.

강보라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복수/복제의 존재론적 의미를 여러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실물 판화를 디지털화하여 복수원본성을 지닌 물질과 비물질의 작품으로 존재하게 하기도 하고, 변환한 디지털 작품을 NFT 민팅해 다수의 증빙 가능한 에디션으로 만들어 디지털 복수원본성을 구축하기도 한다. 또는 같은 이미지의 실물 판화와 NFT 민트 디지털 작품을 교환하게 함으로써 가치의 동등성을 드러나게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물질과 비물질을 넘나들며 강보라는 복수/복제의 존재론적 의미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판화는 복제기술매체예술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판화를 이어 사진, 복사기 등이 등장했고, 디지털 기술에 의해 비물질적인 복제술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인터넷으로 ‘공유’라는 형태의 무한 복제술이 일상화되었다. 강보라는 고전적인 판화 작업에서 시작하여 판화의 범주를 넓히고,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디지털 형식으로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것의 의미를 되짚을 뿐만 아니라,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복수/복제 작품(판화)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사유하도록 이끈다. 내일의 강보라 작업이 궁금한 이유는 이렇게 그의 작업 세계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원소를 쓸어 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강보라가 최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는 먼지는 보이는 것 중에 가장 작은 것에 속하며 다양한 차원으로 변주된다. 자기 항상성을 가지는 개체의 방어벽을 넘나들 수 있을 만큼 미세한 존재들을 대변하는 먼지는 양가적으로 다가온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고 윌리엄 블레이크가 노래했던 낭만주의적 감성은 유한과 무한, 순간과 영원을 상상으로 연결시켰지만 재난 또한 세계적 수준인 현대에도 그럴 수 있을까? 바닷가의 모래가 아닌 먼지는 일상과 더욱 가까이 있으며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해 보인다. 먼지는 우선 청소와 제거의 대상 아닌가. 삶 속에 파고들고 있는 미립자는 얼마 전 전 세계 인구 80억 명 가까이 다 같이 겪었던 재난을 통해 잊혀 있던 자연의 힘을 다시 각인시켰다. 재난은 경계를 넘나드는 미시적 존재에 대해 더욱 방어적 태도를 가지게 했다. 위기 상황에서 동일성을 위협하는 타자에 대한 경계는 더욱 강해진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먼지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상상은 가상현실까지 이어진다. 관객이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작품 [디지털 고물상]에는 우주 같은 검은 공간 속에 쓰레기들이 정처 없이 떠돈다. 잠시 기능이라는 질서를 유지하다가 다시 원래의 무질서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우주는 먼지로부터 이루어졌고 먼지로부터 만들어진 별이나 그 별에 사는 자연 또한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먼지가 되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먼지가 되는 과정 중에 있는 쓰레기들의 쇄도는 묵시론적으로 다가온다. 한 기술이 탄생하고 폐기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혁명적 기술일수록 인간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고 그만큼 많은 부산물도 생산되었을 터이다. [디지털 고물상]은 얼마 전에 서비스가 종료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영감을 받았다.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기술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룰 만큼 지배적이다. 잘못 유포된 개인 정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도 있는 만큼 디지털 고물상 또한 개연성이 있다.

시스템이야말로 한두 군데가 아닌 전면적으로 바뀌는 것이기에, 가상현실을 떠도는 고물들 또한 유적지에 남은 유물 같은 분위기를 가질 수도 있다. 구식 스마트폰이나 MP3 같은 기기에 저장되어 있던 게임이나 음악을 다시 플레이하게 할 때의 색다른 감흥도 있다. 지난 1990년대에 ‘비디오아트’ 같은 첨단 분야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작품들을 일제히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소요된 노력이나, 그 이후 가속화된 코드의 전환에 따른 적응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웹상에서 존재하며 미디어 기기를 필요로 하는 강보라의 작품 또한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지배적 기술과의 신속한 공조는 경쟁력이 되었다. 가상현실은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철저히 현실과 연동되어 있다. 광부의 노동이 아니면 기계를 만들 광석을 어디서 채취하겠는가? 누구 말대로 가상현실에 문제가 생기면 전기코드를 뽑아 버리면 그만일지 모른다.

작품 속 먼지는 현실에 편재하고 변형된 판화라는 매체에 담겨졌으며, 현실만큼이나 강력하게 다가와 있는 현실에도 적용된다. 강보라의 작품에서 먼지는 생산력 있는 씨앗으로 여러 차원을 토양 삼아 발아하고 생각지 못한 영역에도 가지를 뻗는다. 먼지는 입자로 이루어진 우주에 대한 고대로부터의 상상이나 레고 블록같이 기본 단위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적 세계에 대한 상상과 닿아 있다. 구성은 해체를 동시에 의미한다. 2023년 청주창작스튜디오 전시실에서 열린 [Scrap paper]전에서 폐지 조각들을 모아 밤하늘의 별들을 수놓고자 했다. 작가의 탐구에 의하면 우주먼지 없이는 밤하늘의 별도 관찰할 수 없다. 이전 작업에서는 낙엽으로 만든 벽돌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수집한 낙엽을 레진으로 굳혀 만든 벽돌로 설치된 작품 당신이 사는 곳을 연출한다. 그때 강보라는 다나 해러웨이가 ‘인간(human)’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부엽토(humus)로 본 것을 인용하면서 “결국 우리는 미세한 입자의 형태로 돌아가 나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팝송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바람에 나부끼는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기원과 종말을 먼지를 통해 사유한다. [Scrap paper]전에서 둥글거나 타원형 또는 사각형 등의 형태로 벽에 설치된 작품들은 콜라그래프로 다양한 곳에서 수집된 먼지들을 고착시키는 방식이란 점에서 판화적이다. 먼지는 점, 선, 얼룩 등의 다양한 조형 언어와 중첩된다. 수집된 먼지들은 우연과 필연이 복합된 형상을 이룬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볼 때 같은 우주가 일상의 구석구석에도 편재함을 암시한다. 작가가 수집한 먼지들은 그 자체를 주목하게끔 고안된 조형적 장치에 의해 다시 보여지는데, 마치 성운성단이 탄생하는 듯한 우주적 장면과도 겹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 자체가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리적 가설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의 메인 공간에 붙은 타원형 주변의 원형 작품들은 크기와 밀도가 달라 가상의 원근감을 형성한다. 먼지는 가까이서 또 멀리에도 편재한다.

타원형 안은 그리드처럼 구획되어 있다. 마치 여러 장소를 보는 화면이 집합된 것 같은 모습은 눈앞의 것들이 더 많은 표본 중의 일부에 불과함을 말한다. 설치적인 방식으로 배치된 평면들은 화이트 큐브를 여백 또는 고대 원자론자들이 가정한 빈 공간으로 사용한다. 고대의 원자론자들에게 빈 공간이 가정된 것은 만물의 근본 입자들이 이합집산의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보라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재현 또는 재연되는 먼지는 고정된 경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안팎을 넘나들면서 사건을 만든다. 미립자들은 단지 신기한 형태가 아니라 서사의 물꼬가 된다. 2022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Cosmic Dust]전에는 어둑한 공간에 먼지 형상을 확대해서 보는 장치들을 추가하여 거대 우주를 이루는 미시 입자들을 관찰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증강현실로 나타난 작품에서 화면에 먼지 뭉치들이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이는 관객에게 사진 이미지로 전송될 수도 있다.

밀도 있는 작품의 경우 확대라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시세계를 관찰하는 장치들은 복제 매체로서 판화의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2022년 전시에서는 모바일 기반 증강현실 장치가 첨가되기도 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연상시키는 광학적 장치들은 일상적 세계의 중심을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미술사적으로도 추상미술의 탄생에 이러한 시각 환경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확대의 시점은 창조보다는 발견의 가치를 말한다. 요컨대 그것들은 자연에 이미 있던 것이다. 하지만 먼지는 보여서는 안 되는 오물로 간주된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먼지는 더욱 불청객이 되었다. 그것은 개체의 방어벽을 뚫고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무엇을 옮기는 매개체로 의심된다. 강보라가 낙엽으로 만든 벽돌집은 코로나 시기에 콘크리트 아파트를 뚫고 들어온 바이러스를 비유한 것으로, 만물의 본질이 입자임을 말한다.

작가는 이러한 입자들의 여정을 단편소설로도 썼다. 소우주와 대우주의 공통 요소인 먼지에 대한 상상력은 인류가 외계로 이주하면서 생길 법한 감염이나 돌연변이 같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상 반응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영상 작품의 기반이 되는 SF풍의 소설은 작가가 평소에 써 왔던 것이다. 여기에서도 먼지, 즉 더러운 것들은 경계의 감각을 고조시킨다. 그것은 원천 봉쇄되거나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은 타자에 대한 민감도를 더 드높였다. 원래 ‘개인’이라는 단어의 어원에는 마치 원자처럼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개체(individuum)라는 의미가 있지만,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는 견고하지 않다. 다나 해러웨이는 [유인원, 사이보그, 여자: 자연의 재발명]에서 무엇이 단위로, 즉 하나로 간주되느냐의 문제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의문시된다고 말한다. 개체의 통일성이나 순수성에서 억압을 간파하는 다나 해러웨이는 경계조건과 공유영역, 경계를 가로지르는 흐름의 속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강보라의 주요 소재인 먼지는 미립자를 대변하는 것으로 바이러스뿐 아니라 매체계의 불안정성도 말한다. 펠릭스 가타리는 [카오스모제]에서 과학기술, 생물학, 컴퓨터 기술, 정보통신 매체의 세계는 매일 우리의 정신적 좌표들을 한층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강보라가 쓴 SF풍의 소설에는 유전자의 변형 및 변조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결국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해독되면서 높아진 편집 가능성이 도래하게 할 극도의 통제 사회를 낳는 단초이다. 그것은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에서 묘사한 미래의 인간공학이 인간의 유전자 설계까지 밀고 나갈 것이라는 예견과도 맞닿아 있다. 동물 타자에게 일어난 것들이 인간 동일자에게도 일어난다면, ‘인간농장’은 극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선택적 탄생을 추동할 것이다. 인공적인 생명의 설계에 관련된 디스토피아풍의 이야기에서 먼지, 바이러스, 유전자 등의 미립자는 공존한다. 

다나 해러웨이는 [유인원, 사이보그, 여자: 자연의 재발명]에서 과학은 자연을 재구성해 왔으며, 유기적 생명과 본능성은 관리 대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다나 해러웨이가 염려하듯이 과학기술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안정된 진화 전략에 기울곤 한다. 몸은 최초이자 최후의 자원이 될 것이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인간의 신체는 그 신체를 파헤치고 분해하며 재구성하는 권력 장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처벌 중심의 무대를 대신해서 나타난 것이 감옥이라는 획일적인 장치이고, 이후에는 사회화라는 총체적 장치를 통해 권력의 대상이 된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의 몸은 과격한 행위나 힘,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광학과 역학의 모든 법칙, 그리고 공간, 선, 막, 다발, 비율 등의 모든 작용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강보라의 영상작품에 나타나는 SF적인 무대는 완벽하게 닫힌 세계와 관련된다. 권력이 일사불란하게 작동되는 일종의 전체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의 현실은 권력의 특유한 기술,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의 기술’에 의해 제조된다. 인류학자들은 몸은 항상 사회의 이미지로 취급되었음을 말한다. “신체 통제는 사회 통제의 표현이다.”(메리 더글라스) 하지만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경계가 침해되는 지대에서 삶과 죽음, 매혹과 공포는 하나가 된다. 강보라의 작품에서 먼지로 대변되는 미립자는 몸이 안팎이 구별되는 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뫼비우스 띠처럼 가변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이는 엘리자베스 그로츠의 사유와도 연결된다. 작품 [인천국제공항 제1, 2 여객 터미널]은 국가 간 안과 밖의 경계 지대라고 할 수 있는 공항에서 수집된 먼지들로 만든 작품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연안부두로 70 같이 작품 제목에 장소를 특정하여 인덱스 같은 면모를 강조한다. 작품은 여러 크기와 형태의 바탕으로 먼지가 채집된 장소의 운치를 살리기도 한다. 부드러운 산등성이, 거센 파도, 동글동글한 조약돌, 도시의 상징인 사각형 벽돌 같은 다양한 형태 안치된 동질이상(同質異像)의 것들이 나열된다. 이러한 일련의 것들은 끝이 없을 것이다.

우주가 유한하지만 인간이 고차원을 정복하지 못한 이상 무한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 속 다양한 양태의 입자들은 바로 거기에 있던 것이며, 이는 동시에 작가가 그곳에 있었음을 말한다. 그것들은 단지 상상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맥락은 달라지면서 마치 사진처럼 확실하면서도 불확실한 것으로 변모한다. 작가는 장거리 여행 중에 열차의 시트 등에 남아 있는 타인의 흔적들을 주목한다. 하얀 시트를 더럽히는 먼지들은 이후 하얀 평면 위에 의미를 담는 언어로 재탄생한다. 강보라의 작품이 보여주는 대·소우주의 비전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우주가 아니라 모호한 흔적들의 연속이다. 태양계의 중심인 태양 역시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가는 운명은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가 노트에서 “하늘 위 우리가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태양의 생존 주기는 약 100억 년 정도”라고 하며,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원천인 태양이 연료로서 자신의 수소 기체를 다 소모하면 우주 속의 ‘한 점’이 된다고 말한다.

‘먼지, 입자, 폐지는 어떤 본체의 부산물이자 조각이고, 이것들은 결코 하찮지 않다. 태양부터 폐지 한 조각까지 우리 삶은 결국 이런 것들로 이뤄져 있다’는 자각이다. 자기 옷부터 시작해서 공항의 발매트, 서울에서 뉴욕까지 여러 곳에서 먼지를 수집해 왔지만 작가의 관찰에 의하면 장소에 따른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먼지는 원자처럼 보편적이며 편재한다. 가상현실 속 먼지는 [디지털 고물상]에서 처치되어야 할 잉여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영상보다 먼저 소설로 서술되었으며, 주인공은 작가의 아바타인 ‘보라 I-E’다. 지구가 멸망하고 화성으로 이주한 이들이 유리 돔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닫힌 시스템 속 저장 공간이 정해져 있는데, 어떤 데이터들은 버려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지구에 살던 선조들처럼 고물상을 운용한다는 설정이다. 쓸모없는 정보는 버려져야 새로운 저장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는 애초에 어떤 사회가 어떤 기술 내지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처럼 권력의 문제이다. 몸의 경계처럼 유용성의 기준도 있는 것이다.

강보라는 자신의 소설 [제3염색체]에서 밀폐된 돔에서 모두가 같은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화성을 가정한다. 이 소설에서 지구가 먼지로 뒤덮여 더 이상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자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화성행 티켓은 소수 기득권에게 한정되었다. 이주한 화성 이민자 3세대들이 염색체의 변이를 거쳐 다운증후군 환자 같은 외형을 가지게 된 것은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 낯선 행성에서의 전염병에 살아남기 위해 시간에 쫓겨 가며 실행된 졸속의 실험은 많은 희생자를 낳는 등 팬데믹 시기에 모두가 겪었던 상황과 비교된다.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급격하게 변하고 변한 것들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많은 혐오, 다툼도 존재했다”는 대목은 위기가 계층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화성 이주 1세대들은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비슷하게 재현된 지구 탈주자이자 화성 정착자들이다. 이들은 염색체 변이나 사고의 여파도 있지만, 그전에 이미 인간은 대중으로서 동질화되었다.

인간과 시스템이 경쟁하면서 자신의 위상이 더욱 불안정해질 때 비로소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가능해진다. 위험에 대한 대처를 통해 인간사회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온전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현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전 보르도가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에서 말했듯이 재현은 동질화를 가져온다. 동질화된 이미지들은 정상화된다. 강보라의 작품 속 동질성을 위협하는 이질성은 재현을 불안정하게 한다. 먼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먼지로 그리는 또는 만드는 이미지는 이미 재현이 아니다. 미시적 입자를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것은 그것을 완전히 제어하려는 권력에의 의지이다. 먼지는 다소간 중성적인 소재지만, 그것이 바이러스나 유전자 같은 또 다른 미소세계로 확장되면서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적 의미가 강해진다. 작품의 서사는 보다 사회적인 의미로 구체화된다.
 
시간을 채집하기 : 위생의 조건을 유지하기
백기영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 인류를 속수무책으로 만든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질병을 통제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일차적 공포는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에 있다. 사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면서 우리 몸에서 변이를 일으켜 신체 기관을 파괴하거나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류가 알아 낸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 작은 생명체를 발견해서 보게 해준 현미경의 덕이 크다. 1590년경 네덜란드의 안경공 얀센 부자는 눈으로 보기 힘든 작은 물체를 관찰하기 위해 크게 보이게 하는 광학기구로 현미경을 발명했다. 현미경의 발명은 생물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는데, 미세한 생명체까지 관찰할 수 있는 전자 현미경은 1930년대 이르러서야 나타났다고 한다.
 
반대로 멀리 있는 것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광학 장치도 비슷한 시기에 발명되었는데, 1608년 네덜란드의 안경 제조업자였던 한스 리퍼 세이(Hans Lipper Shey)가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를 서로 결합해서 사물보다 훨씬 멀리 볼 수 있는 최초의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현미경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보게 해 주었으며 망원경은 광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특이하게도, 우리 눈은 현미경을 통해서 미세한 세계를 들여다 볼 때,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형상을 벗어나 추상적이고 초 정밀한 세계에 도달한다. 반대로 망원경을 통해서 거대한 우주의 공간을 볼 때도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추상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거대한 우주와 작은 미립자들로 구성된 추상적인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강보라의 <먼지 시리즈>는 오래 살던 집에서 이사 갈 때, 가구를 들어내면서 생긴 먼지의 흔적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시작됐다. 이 먼지들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삶의 파편과 흔적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현미경 속의 세계를 관찰하는 것처럼 말이다. 판을 제작하고 잉크를 묻혀서 프레스나 롤러로 문질러 찍어내는 판화를 기법으로 구사했던 그녀에게 가구 밑에서 나타난 흔적은 스텐실로 찍어낸 단면처럼 보였다. 가구가 있다가 사라진 자리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매우 판화적 이었다. 이 흔적은 공간에 거주했던 사람의 생활 먼지가 쌓인 시간만큼의 역사성을 지닌다. 이사를 한다거나 공간을 송두리째 뒤집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미세먼지들이 경과된 시간과 함께 우리 생활 공간 속에 파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상의 먼지들은 병원균이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 먼지들을 현미경 위에 올려놓으면,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엉겨 붙어 움직이는 모양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미술작품을 현미경으로 보거나 망원경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고안된 렌즈를 통해서 지금의 예술작품을 관람하도록 한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명작들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보일 것이다.
 
강보라는 작업실이나 자신이 생활하는 일상 공간에서 먼지를 채집했다. 이 먼지들은 작가의 일상이 만들어낸 '삶의 자취'로써 기록이다. 채집한 먼지를 화면에 부착하고 보니, 표준화된 안료 표면과 달리, 불규칙적인 물질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형태와 색을 볼 수 있었다. 이 흔적은 달의 분화구나 행성의 표면에서 나타나는 형상처럼 우주적인 느낌을 준다. 만 레이가 찍은 마르셀 뒤샹의 <큰 유리> 작업의 진행 과정을 기록한 사진은 십 년이 넘게 유리판에 쌓인 먼지 사진이었다. 만 레이는 이 사진을 보고 달의 분화구 같다고 했다.
 
강보라는 2017년에 지판화 작업 '먼지(스튜디오)#1'을 통해서 추상적인 화면을 실험한다. 대부분의 판화가 여러 장의 에디션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품들은 단지 한 장, 많게는 1/3장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회화의 유일무이성을 지닌다. 20㎝×20㎝ 크기의 캔버스에 채집된 먼지를 부착한 '먼지(스튜디오)#2'는 가로 다섯 개 세로 여섯 개의 캔버스를 몇 군데 빠진 상태로 설치했다. 규칙적이고 균일한 화면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먼지의 채집이 나타내는 임의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추상 작업은 2016년 티-셔츠에서 떨어진 먼지를 양면테이프에 붙여서 패널에 제작한 '먼지-티-셔츠(Dust-T-shirt)', 니트에서 떨어진 먼지를 채집해서 붙인 '먼지-니트(Dust-Nit)'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학교에서 채집한 먼지를 10㎝×10㎝ 크기의 캔버스에 채집한 '먼지(학교)'시리즈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먼지의 질료, 그리고 밀집도에 따른 추상적인 형태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것으로 강보라 작가의 초기 작업을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2019년 강원도 고성의 산불 현장에서 먼지를 채집하거나 잿가루가 쌓인 화재 현장을 물티슈로 닦아내며 나타난 형상으로 제작한 작품 '20190404 - 강원도 고성 산불'은 오랜 시간 생활 공간에서 축적된 먼지를 채집했던 지난 작업들과 다르다. 이 먼지는 화마가 순식간에 휩쓸고 간 재난의 순간에 뜨거운 불길로 연소된 숲에서 나은 흔적이다. 먼지와 흔적에 골몰하던 작가가 산불 현장을 목도하고 장대한 재난의 광경을 채집할 수 있는 방법으로 궁리해 낸 것이다. 강보라의 작업은 판화적 기법을 응용하고 있지만, 공간 설치와 행위 그리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 과정에서 노동 집약적인 수행 과정을 동반한다.
 
고성 산불 작업이 손에 묻은 흔적을 프린팅하는 방법으로 재난의 먼지를 채집했다면, 올해 도봉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평화문화진지의 기획전 '당신이 사는 곳'에 출품된 작품들은 더 물질적인 흔적을 내포하는 오브제로 전환되었다. 작가는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녹슨 못이나 철사 혹은 금속 조각이나 전자제품의 기계 부속 따위를 에폭시를 녹여 부어서 박제화 시켰다. 이 오브제들은 포름알데히드에 담가 부패를 방지시킨 자연사박물관의 전시물을 닮았다. 연약하고 견고하지 못한 낙엽이나 지푸라기에 레진을 부어 벽돌을 만들고 이 벽돌을 쌓아 벽을 세웠다. 이 구조물은 불완전하고 토대가 부실한 지금의 아파트 주거 상황을 은유한 것이다.
 
올해 열린 강보라의 또 다른 개인전 <뮤(μ)>는 구기동에 있는 공간 일리가 운영하는 <규중칠우쟁론기>의 7인의 릴레이 전시의 일환으로 초대되었다. 작가는 이 작은 전시 공간의 입구에 코로나 19 발열 체크 장치를 설치하였으며, 바닥에는 공항이나 항만의 출입국 관리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역매트를 깔았는데, 해외 입국자들이 이 매트를 밟고 지나가면 살균이 될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다. 작가는 또한 살균매트를 통과한 관람객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전시공간과 바닥 전체를 무균질 백색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전시장 벽면에는 <먼지 시리즈>를 걸어 놓았다. 전시 제목 <뮤(μ)>는 미생물의 크기와 같이 아주 작은 크기를 잴 때 사용하는 micron의 기호라고 한다. 이 작업은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팬데믹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얀 백색 공간에 걸려있는 먼지 이미지들은 보이지 않는 전염성 병원균을 마주하는 알 수 없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일상적으로 손 씻기를 생활화하고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는 상황을 가급적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대처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의 습관을 통제할 뿐이다. 우리는 더러운 얼룩, 먼지와 흔적을 제거하고 백색 공간을 유지할 때 편안함을 느끼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는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오늘 하루 일상에서 내가 혹시 코로나 19 감염자와 만났을 수도 있고 그가 만졌던 물건을 함께 만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지, 본다는 것, 복제하고 확장하기
황수경 (독립기획자)
먼지는 성경에서 이방인의 땅을 여행하고 돌아온 유대인이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표현된다. 이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도 제거하려는 유대인의 철저한 정결 의식(意識)이다. 강보라 작가가 2021년 공간:일리에서 열었던 개인전은 이러한 의식과도 같았다. 입구에 설치된 전신 소독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알코올과 전시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바닥에 놓인 방역 매트를 통해 외부의 먼지를 제거하는 첫 번째 의식을 행하고 나면 바닥 전체를 하얀 천으로 감싼 공간에 입장하는 두 번째 의식을 치룬다. 바닥에 깔린 흰 천에 혹여 발자국을 남길까 조심하지만 결국에는 발 도장처럼 흔적을 남기며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하얀 벽에는 우주의 형상을 찍어낸 것 같은 판화작업들이 표본실에 진열된 것처럼 유리 액자를 사용해 전시되어 있었다. 2021년 작가의 전시는 예정된 일정보다 4개월이나 늦은 10월로 연기되어 열렸는데 그 이유가 바로 코로나19에 감염되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러한 감염과 격리의 경험을 통해 평소 작업 매체로 사용하던 먼지를 제거 대상으로 강박적 서술을 하도록 한 원인이 되었다.

당시 전시 제목인 <뮤(μ)>는 미생물의 크기와 같이 아주 작은 크기를 잴 때 사용하는 micron의 기호이다. 판데믹을 미리 예측하고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2019년도 인천 연안부두에서 진행했던 작업은 항구 입구에 놓여진 방역 매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방역 매트가 질병을 전파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의 유해균을 일차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여러 섬과 인근 나라들을 오고 가는 항구의 특성상 위험요소를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 결코 아주 작고 미세한 균까지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다. 이 작은 입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잠입하여 이동했을까?

작가는 이후 이러한 미세 입자들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실험실의 연구원처럼 현미경을 통해 보이지 않는 형상을 확대해 나갔고 이 입자들이 구성한 세계를 관찰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판화작업에서의 먼지와 우주배경복사의 요동 이미지가 흡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작가의 먼지는 우주로 확장했다. 한없이 넓은 우주에서 극히 먼지처럼 작은 인류 그리고 그들의 흔적들은 더 미세하기에 그 작은 흔적을 찾아 이번엔 미래의 고고학자가 된다. 인류가 남긴 흔적을 수집하여 그것을 직접 찍어내는 콜라그래피(Collagraphy)로 현재의 시간을 복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다시, 디지털 복사본으로 남기는 작업을 통해 가상의 디지털 세계로 확장한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방식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우선 우리의 눈으로 그의 판화 작품을 감상하고, 이어 테블릿을 통해 증강된 디지털 먼지 형상을 보게 한다. 그리고 전시장 한편에 마련한 실험실에는 현미경을 통해 미세한 입자들을 들여다보게 하는데 그렇다면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게 하려고 우리의 눈을 포함한 광학 장치들을 비치했을까? 맨눈을 통해 보는 현실의 먼지와 디지털 세상에서의 먼지를 증강현실로 함께 바라보게 하고, 실현되지 못한 코딩 언어를 실타래처럼 뭉쳐서 흡사 먼지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본체에서 분리된 이미지가 우주를 떠돌며 유영하는 우주 쓰레기와 연결되는 지점인 듯하다. 그리고 다시 현미경을 통해 식별하기 어려운 먼지를 확대하여 자세히 관찰하게 하는데, 현미경을 가장 작은 물체를 관찰하기 위한 렌즈라고 하며 microscopia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한 이유처럼 작가는 망원경이 아닌 이러한 마이크로한 것을 통해 작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우주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강보라 작가가 인류의 흔적으로 먼지를 소환한 것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우주의 모습을 넘어, 다양한 소우주의 존재들이 더 큰 우주를 형성하기에 절대 미흡하지 않음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라고 답한 마틴 리스의 말처럼 작은 것은 절대 하찮음이 아님을 이번 전시에서 그의 시그니처 매체인 먼지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아주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유대인이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불결함과 혐오의 대상이 아닌, ‘비체 다시, 보기’로 강보라 작가는 판화로 그것을 복제하여 기록하고, 현실과 가상의 사이에서 증강된 언어의 파편들로 우리가 본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서 놓친 ‘무엇’을 마음의 망원 렌즈를 통해 확장해 보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나만의 결론으로 이번 전시에서 그의 먼지를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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